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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29 No.5 pp.735-746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21.29.5.735

The characteristics and making techniques of the woven belts excavated from the tombs of Uiwon-gun and Sim Ikchang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Yoon Mee Park†
Research Professor, Dept. of Traditional Costume, Dankook University, Korea
Corresponding author (yoonmpk@hanmail.net)
September 11, 2021 October 8, 2021 October 10, 2021

Abstract


Uiwon-gun (1661-1722) and Sim Ikchang (1652-1725) were people of the upper classes of the Joseon Dynasty, who’s belts woven with thread were found in their grave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a term suitable for the belts of these two people and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the two belts and decipher the 8-character text marked on Shim Ikchang’s belt to understand its meaning. The terms u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related to woven belts include “Gwangdaho”, “Daeja”, “Bunhapdae”, “Sagagda”, “Bangseungah”, and “Samunjikdae”. Among these terms, “Gwangdahoe” is the most suitable to indicate the belts of for both belts. The belts are made of a silk fabric of narrow width. The size of Uiwon-gun’s belt is 2.8× 199cm, and because it is folded in half lengthwise and sewn, the original width is 8cm. It was woven in the imitation gauze technique. Sim Ik-chang’s belt measures 10.5×258cm and is decorated with a woven net at the end. There are water and mountain patterns on both ends of the belt, with 11 lines of flower patterns equally spaced between. The belt is damask, the inscription part is made of brocade with letters expressed in golden thread. The meaning of the inscription is “Made in Hanbu. May you live a long and healthy life”.



17~18세기 의원군과 심익창 묘 출토 광다회(廣多繪)의 양식과 제작기법

박 윤 미†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연구교수

초록


    I. Introduction

    조선시대의 남성들은 포(袍) 위에 허리띠[腰帶]를 둘렀는데, 포(袍)의 품이 넓으 므로 끈으로 허리를 둘러 정돈하거나 착용의 편안함을 위해 필요했을 것으로 여겨 진다. 조선시대의 분묘에서 출토되는 유물들 그리고 초상화 등 회화자료를 살펴보 면 옷감으로 만든 것뿐만 아니라, 허리띠 용도로 직조를 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조 선시대의 허리띠는 주로 엮음직의 기법으로 제작되었 으며, 가장자리에 망(網)으로 섬세하게 장식한 화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남성의 허리띠가 이토록 화려했 던 것은 남성 포의 색상이 대부분 단색이므로 화려하 고 세련된 허리띠가 단조로운 색상의 의복에 두드러 지는 장식적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한 요인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의원군(1661-1722)과 심익창(1652-1725)은 모두 사 대부 가문의 후손이며, 생존 시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의 묘에서는 여러 복식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실로 짠 허리띠가 한 점씩 발견되었다. 의원군과 심익 창 허리띠의 너비는 각각 2.8cm와 10.5cm인데, 의원 군의 허리띠는 겹으로 바느질되어 있어 실제는 8cm 로 넓은 편이며, 무엇보다도 경사와 위사가 90°로 교 차하는 조직으로 일종의 ‘소폭직물(小幅織物)’ 형태의 허리띠이다. 소폭직물은 말 그대로 좁은 폭으로 짠 직 물을 뜻하며, 삼베나 무명 같은 전통직물의 포폭이 대 개 35cm 내외인 것에 반해 그보다 좁으며, 옷감보다 는 다른 용도로 직조되었다. 조선시대 18세기까지의 소폭직물형 허리띠는 현재까지는 의원군과 심익창의 것만 보고되었다. 2점 모두 무늬가 시문되어 있고, 특 히 심익창의 요대에는 한쪽에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양 끝에는 망까지 드리운 조형성이 뛰어난 아름다운 허리띠이다.

    ‘광다회(廣多繪)’는 납작하고 폭이 넓은 끈목을 가 리키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Oh(1997)는 ‘다회’는 순 수한 우리말인데, 한자를 차용하여 ‘多繪’로 표기하였 으며, ‘同多繪/童多繪/東多繪(동다회)’는 단면이 둥글 게 짠 끈목을 뜻하고, 廣多繪는 ‘넙다회’의 표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광다회나 동다회 이외에도 조 선시대의 실로 짠 허리띠에 대해서는 다양한 용어가 있으며, 유사한 형태의 허리띠에 대해서도 유물 발굴 기관이나 연구자마다 다른 이름으로 명시하기도 한 다. 수년 전부터 다회에 관한 문헌 및 실물 연구가 다 각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물을 대상으 로 분석한 연구로 Kim(2008)의 조대(絛帶)의 명칭과 형태적 특징 그리고 제작법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하여, Lim(2008)은 조선시대 광다회를 재현하였고, Park and Chang(2016)은 출토유물을 대상으로 청조 색(靑皁色)을 활용하여 조대를 재현하였으며, Baek (2017)은 도검 패용 광다회의 제작기법을 분석하고 복원하는 등 근간 다회의 실물 분석과 재현에 관한 연 구가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는 모두 엮음직에 국한되어 있는데, 소폭직물형 끈목에 대해서는 Park(2016)이 현전하는 왕실 교명(敎命)의 대자(帶子)에 관해 서술하였으며, Park(2019)의 연구 에서는 근대의 광다회 직기를 복원하면서 해당 직기 에서 직조할 수 있는 광다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 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소폭직물형 허리띠 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자료가 부족한 조선시대의 남성 소폭직물형 허리띠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첫째, 의원군과 심익창 묘에서 출토된 소폭직물형 허리띠의 적합한 용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둘째, 유물 의 조직, 밀도 등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고, 심익창 광다회에 새겨진 명문을 파악하여 그 뜻을 밝히도록 한다. 연구방법은 문헌 조사와 실물조사를 병행한다. 문헌 조사는 고문헌에 언급된 소폭직물형 관련 용어 와 사용된 물품 등을 조사하여 발췌하고, 회화자료 등 을 검토하여 적절한 용어를 택하도록 한다. 실물조사 는 비파괴조사를 중심으로 실체현미경(Nikon Shuttle Pix P-400R)과 확대경 등의 기구를 사용하여 유물을 관찰하고, 허리띠 소재의 종류와 물리적 특성, 직조 기 법 등을 분석하도록 한다. 조사 대상이 비록 2점에 불 과하지만 17~18세기의 소폭직물형 허리띠로는 유일 하게 현전하는 유물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현재 두 유물은 모두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Ⅱ. Historic Terms of the Flat and Wide Woven Tape

    고대부터 문헌에 기록된 허리띠에 관한 명칭은 매 우 다양하며, 일부는 도설(圖說)이나 초상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단면의 형태가 납작하 고 폭넓은 끈목에 관한 명칭을 살펴보도록 하는데, 옷 감으로 만든 포대(布帶)가 아니라, 직기에서 직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에 한하도록 한다. 그런데 의원군 과 심익창의 생존 시기와 유사한 시기의 직조형 허리 띠는 크게 두 가지의 기법의 것이 전하여지고 있다. 첫 째, 경위사의 구분은 없고 양쪽의 실이 사선으로 엮이 면서 직조하는 것으로 엮음직의 조직이며, 현재 다회 틀에서 제직하는 끈목과 같다. <Fig. 1>은 변수(1447- 1524)의 묘에서 출토된 광다회로 엮음직의 기법으로 직조되었고, 가장자리에는 망과 술을 달았다(National Folk Museum Korea [NFMK], n.d.). 이러한 유형은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다수 확인된다. 둘째, 경사와 위사가 90°로 교차하는 조직으로 요직기를 포함한 직 기에서 직조하는 유형이다. 다회틀도 넓게 보면 직기 의 한 종류이나, 본 연구에서는 엮음직을 짤 수 있는 것은 ‘다회틀’로 분류하고, 경사와 위사가 90°로 교차 하는 조직의 제직 도구는 ‘직기’로 구분하여 기술하도 록 한다.

    1. Gwangdahoe

    납작하고 폭넓은 끈목의 가장 대표적인 용어는 ‘광다회(廣多繪)’이다. 광다회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1540년의 기록에서부터 보이는데, 옥대의 장식용으로 서 ‘대홍광다회(大紅廣多繪)’가 언급되어 있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NIKH], 1362-1863a). 그 리고 명안공주가례등록(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AKS], 1680~*)과 가례등록(TAKS, 1638~ 1662) 등에는 토환(吐環)에 소용되는 ‘홍사광다회(紅 絲廣多繪)’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토환은 허 리띠 장식 고리인데, 광다회를 고리에 끼워서 허리띠 로 사용했다. 홍사광다회는 붉은 실로 짠 광다회라는 의미로 해석되므로 직기에서 직조한 넓은 끈목으로 추정된다.

    진찬의궤는 순조 28년(1828) 11월부터 이듬해 2 월 사이에 순조에게 진찬을 행한 기록인데, 도식(圖 式) 가운데 선유락(船遊樂) 정재 여령이 사용하는 환 도(環刀)와 동개(筒介)(Fig. 2)에는 넓은 끈이 매어져 있다. 해당 의궤의 품목(稟目)에는 환도와 동개의 소 재와 가격이 적혀 있는데, “환도 2개 가격은 13냥 5 전, 손잡이감개[柄甘伊]용 초록분합대는 1냥 6전, 영 자(纓子)용 초록세초대(草綠細綃帶)는 6전, 그리고 자 적광다회대(紫的廣多繪帶)는 3냥”으로 기록되어 있다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KIKS], 1829a). 의궤의 내용과 도식(KIKS, 1829b)을 비교해 보면 넓은 끈이 자적광다회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도에 장식하는 광다회를 소폭직물형으로 제직되기 도 하였다는 것은 철종 어진(Fig. 3)에서 확인할 수 있 다. 철종의 뒤편에 검이 세워져 있는데, 초록색 광다 회가 장식으로 달려 있다. 광다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로 방향으로 확연히 줄이 보이므로 엮음직이 아니 라 직기에서 직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양 쪽 가장자리에 망수 장식이 달려 있는데, 전체적인 구 성으로 보아 진찬의궤의 환도 광다회와 유사하다. 철 종 어진의 초록광다회는 크기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너비는 5cm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광다회는 허리 띠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이 되었다. 왕의 용포(龍 袍)(Sangbangjeonglye vol. 3, special rule ‘going to the tomb’, 1750/1979a), 철릭(帖裏)(Sangbangjeonglye vol. 3, special rule ‘crowning of the prince’, 1750/ 1979b) 등의 일습으로 나타내고 있어 의복에 착용하 는 허리띠의 용어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Bunhabdae

    분합대(分合帶)는 분합(分合), 분대(分帶)라고도 하 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환도의 손잡이 감개뿐 만 아니라, 면복이나 강사포 등의 의복과 연여(輦輿) 의 각종 부속에 사용되었다. 분합의 폭은 정확하게 가 늠하기 어려우나, 환도의 손잡이 감개용으로 사용되 는 분합은 대개 너비 1cm 내외의 좁은 폭의 끈으로 감았다. 실로 짠 것 이외에 가죽도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직조한 끈을 사용할 경우에 사선 방향으로 짠 엮음직의 끈목이 신축성이 있어 더 효율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가마의 주요 부속에는 유소를 비롯한 매듭 종류가 상당수 사용되는데, 소재는 다회 틀에서 짠 엮음직의 끈목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 하는 우리말 샘 사전에는 ‘분합대(分合帶)’에 대해 “예전에, 웃옷에 눌러 띠던 실띠. 좁고 납작한 모양이 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분대(分帶)’를 비슷한 말 이라고 한다(“Bunhabdae”, n.d.). 그러므로 분합대는 폭이 좁은 납작한 끈목이나 엮음직의 끈목일 가능성 이 크다고 생각한다.

    3. Osaegsamunjig-dae

    성종실록에는 1484년에 “중금(中禁) 40인을 택 하여 복식을 자적관, 도금토환, 오색사문직대(五色絲 文織帶), 은이환에 겉옷은 자적단령으로 하라”는 기사 (NIKH, 1362-1863b)가 있는데, 이 중 ‘오색사문직대’ 는 ‘여러 색상의 견사를 사용하여 무늬를 넣어서 짠 허리띠’를 뜻하는 것으로, 직기에서 짠 허리띠이며 단 령에 착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원군과 심익창의 허리띠는 한가지 색으로 직조하였고, 심익창 허리띠 의 명문 부분만 금사로 직조되었으므로 ‘사문직대’가 의원군과 심익창의 허리띠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 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4. Saneungdae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 관건(冠巾) 입제변증설(笠制辯證說)에는 이제신의 청강쇄어(淸江 瑣語)를 인용하여 “짙푸른 실로 네모꼴 띠[四RJCC-29-5-735_I1.gif帶]를 짰는데, 네 개의 갑(甲)으로 허리띠 하나를 만들었지 만 대개 위의(威儀)를 차리는 뜻이 있었다(Son & Kim, 1982).”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사능대(四RJCC-29-5-735_I1.gif帶)가 어느 정도의 넓이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납작한 끈을 의미한다고 본다.

    5. Bangseung-a

    이규경은 방승아(方勝兒)에 대해서는 ‘RJCC-29-5-735_I2.gif잠’이며 소위 8사 동다회라고 하는 유소(旒蘇)를 맺는 동방(東 方)으로 설명하고 있다(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ITKC], 19th century). 8사 동다회는 다회틀에서 짜는 단면이 동그란 끈목이다. 그런데 역 어유해에는 ‘四面RJCC-29-5-735_I2.gif즙’을 RJCC-29-5-735_I3.gif[方勝兒]로 언해하 고 있어(Yeog-eoyuhae Yeog-eoyuhaebo, 1690/2005) 방승아는 표면이 사각형인 끈목이나 매듭에 사용되는 좁은 폭의 엮음직의 끈목을 뜻하는 용어로 추정된다. 또한 역어유해에는 ‘匾絛’를 한글인 ‘너븐다회’로 주음하고 있어(Yeog-eoyuhae Yeog-eoyuhaebo, 1690/ 2005) 너븐다회는 납작하고 넓은 끈목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용도와 제작기법에 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6. Daeja

    대자(帶子) 또한 납작하고 넓은 끈목을 뜻하는데, 의궤에는 교명의 회장식에 부착하는 끈목으로 ‘오색 대자(五色帶子)’, ‘영대자(纓帶子)’, ‘당대자(唐帶子)’ 등으로 명시되어 있다. 현전하는 교명의 대자를 조사 한 결과, 대자의 크기는 1.2~7.0cm의 너비와 65~ 176.5cm 길이로 대자마다 크기의 차이가 있으며, 평 직과 중조직으로 직조되었다(Park, 2016). 대자는 20 세기 초에는 허리띠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Lee(2008)는 중국에서 수입하던 대자(帶子)를 본떠서 짠 허리띠를 ‘대지허리띠(부납)’라고 하는데, 대자의 중국 발음이 대지 또는 대주로 들려서, 거기서 허리띠라는 이름을 덧붙여서 부른 것이라고 했다. 그 리고 도포에 띠는 술띠 등에서 넓적하게 짠 것은 부납 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이 내용을 통해 대자뿐만 아 니라, 부납 또한 넓적한 허리띠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폭넓고 납작한 끈목을 뜻하는 용어 가 운데 허리띠의 용도로 사용된 것은 ‘광다회’, ‘사문직 대’, ‘대자’, 그리고 ‘부납’이 있다. 이 가운데 의원군 과 심익창의 허리띠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은 ‘사문 직대’이나, 널리 통용되던 용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광다회’의 ‘廣’은 넓다는 뜻의 한자에서 온 단어이지 만, 다회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므로 의원군과 심익창의 허리띠는 ‘광다 회’가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두 점의 허리띠를 ‘광다회(廣多繪)’로 명시하도록 한다.

    Ⅲ.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ven Belts

    1. Uiwon-gun’s belt

    의원군(義原君, 1661~1722)은 인평대군의 장남인 복녕군(福寧君)의 차남이고, 감사 오단(吳端)의 외손 이다. 그의 묘는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있었으나 1999년 7월 12~13일에 포천군 신북면으로 이장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 많은 복식 유물이 출토되었다. 의원군 묘에서 출토된 복식은 총 60점으로 중치막, 창 의, 단령, 철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Kyounggi Provincial Museum [KPM](2001)에 의하면 출토복식 가운데 ‘광대(廣帶 : No.55)는 대소렴용이며, 도포, 중 치막, 창의 등의 가슴에 매는 넓은 띠(廣帶)이다. 습할 때 심의의 대를 대대로 사용했던가, 혹은 이것을 대대 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하였는데, 출토 위치 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다. 보고서에는 광대로 기록 되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광다회’로 기술하도록 한다.

    광다회의 크기는 너비 2.8cm, 총길이는 199cm이 며, 양쪽 가장자리에 약 9cm 정도의 술이 있다. 광다 회는 반으로 접어 바느질한 상태라서 겹으로 되어 있 으므로 본래의 너비는 8cm 정도이다(Fig. 4). 가장자 리의 술은 경사 올을 그대로 풀어 늘어뜨려 술 장식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끝부분은 아무런 장식 없이 가지 런히 자른 상태이다. 술 위로 약 5cm와 7cm 되는 지 점에 굵은 위사를 위입하여 평직으로 3줄을 짜서 굵은 선 장식을 표현하였다(Fig. 5). 그리고 광다회의 한쪽 끝에서 140cm 되는 지점에 4cm 정도 길이로 흑갈색 문단이 덧대어져 있는데(Fig. 6), 손상된 부분을 보수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의원군의 광다회는 한쪽 가장 자리에 식서가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보아 허리띠를 목적으로 직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약 8.5cm 의 폭으로 제직한 후에 접어 꿰매었다. 광다회의 소재 는 견(絹)이며, 경사와 위사에 같은 실을 사용하였는 데, 왼쪽으로 꼬임을 준 좌연(左撚) 2합사이다. 실의 지름은 0.30~0.45cm이며 직물의 밀도는 cm당 36×19 올로 경사의 밀도가 더 치밀하다.

    의원군 광다회의 바탕조직은 평직이며, 경사를 띄 워서 작은 사각형의 무늬를 표현한 모사직(模紗織) (Fig. 7 and 8)으로 서양에서는 mock leno weaves로 불린다. Woo(1987)에 의하면 모사직은 경사와 위사 를 모아서 사직물(紗織物)과 비슷한 모양이 나도록 표 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조직은 2가지 구조를 얻을 수 있다. 사직물을 모방한 구멍이 뚫린 구조와 spider 또는 net leno라는 직물을 모방한 것으로 실이 구부러 지는 효과의 구조이다. 의원군 광다회에서는 표면으 로 뜨는 경사의 아래로 위입되는 위사는 구부러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본 연구자는 미타사의 극 락전 관음보살상의 복장직물을 조사하던 중 보라색의 연화문능(蓮花紋綾)(Fig. 9)을 발견하였는데, 바탕조직 이 광다회와 유사한 모사직이며, 4매능직으로 연꽃을 시문한 직물로 복장 납입 시기가 1769년인 것으로 추 정한다. 그러므로 17~18세기에 모사직의 직물들이 사 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Shim Ikchang’s belt

    심익창(1652-1725)은 심지원(沈之源)의 아들이며, 관직은 황해도 재령군수를 거쳐 성천도호부사(成川都 護府使)를 지냈다. 심익창의 묘는 2008년도에 파주 심 지원 묘 및 신도비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함께 조사 되었으며, 그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30건 51점이다. 출토유물 가운데 ‘화문단 대대(No.7485)’가 한 점 포 함되어 있는데, 수습 당시 단령 안에 습의로 착용된 대 창의(No.7499)의 허리에 매어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 되었다(Gyounggi Provincial Museum [GPM], 2010). 보고서에는 ‘대대’라고 명시되었으나, 본 논문에서는 ‘광다회’로 표기하도록 한다.

    심지원의 광다회(Fig. 10)는 너비 10.5cm, 길이는 양 끝의 술 13.5cm를 포함하여 총 258cm로 제법 큰 크기의 광다회이다. 광다회는 5매수자직으로 직조한 문단이다. 경사는 왼쪽으로 꼬임이 있는 좌연사(左撚 絲)이며, 지름은 0.18~0.24mm 범위이고, 위사는 경사 2올을 합하여 사용하였다. 직물의 밀도는 cm당 평균 82×22올 정도이다. 바탕조직은 5매2뜀 수자직이며, 해 수강애문(海水江崖紋)(Fig. 11)과 화문(花紋)(Fig. 12) 은 위수자직으로 시문되어 있다. 해수강애문은 세 개 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바위산을 중심으로 파도와 물 결이 있으며, 아래에는 여의(如意) 형태의 상운(祥雲) 이 놓여 있다. 중국에서는 강애해수문이라고도 하는 데, 복산수해(福山壽海)라는 뜻으로 강산을 통일하자 는 의미가 있으며, 용포(龍袍)와 관복에 많이 사용되 던 무늬이다(“Water and mountain motif”, 2021).

    광다회는 양 가장자리에는 해수강애문이 중앙을 향 해 마주 보는 상태로 있고, 그 위로는 화문이 10~11cm 간격으로 11줄이 배열되어 있다. 화문은 절지형의 꽃 이 서로 좌우대칭으로 한 줄에 2세트씩 시문되어 있 으며, 다음 줄의 꽃과도 마주 보는 상태로 배치되어 있어 단조롭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광다회의 가장자 리는 길이 13.5cm 정도의 술장식이 달려 있다. 술장 식은 광다회의 직조에 사용된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 여 몇 가닥씩 좌연(左撚)으로 꼬아 굵은 이합사(二合 絲) 62올을 만든 후 보주(寶珠) 무늬의 망(網)을 짜고, 그 아래에는 실올의 끝부분을 묶은 채 자연스럽게 놔 두었다(Fig. 13). 심익창 광다회의 전체적인 문양 배치 와 크기는 <Fig. 14>와 같다. 심익창 광다회는 의원군 광다회보다 정교하며 제직 기법도 복잡하다.

    광다회의 한쪽 가장자리에는 8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 육안으로는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GPM(2010)에는 “출토 당시에는 글씨에 금사, 은사가 번갈아 직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금속빛은 사라지 고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글자 부분을 실체현 미경으로 관찰해 보니 군데군데 금으로 추정되는 조 각이 남아있어 금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비 파괴분석의 한계로 인해 은사의 사용 여부에 관해서 는 확인할 수 없었다. 명문 부분의 조직은 봉취직(縫 取織)인데, 바탕조직인 5매2뜀 수자직에 위사 한 올씩 걸러 문위사가 위입되어 있으므로 지위사와 문위사의 비율은 1:1이다(Fig. 15). 봉취직은 지위사 이외에 무 늬 부분만 여러 개의 작은 북으로 봉취위사를 넣어 제 직하므로 위사가 전체에 걸쳐지지 않으며, 독립된 무 늬를 표현하게 되어 무늬용 위사의 소모를 방지하고 위이중직에서 건너뛰는 위사를 잘라 파사(破糸)가 생 기는 것을 방지하여 무늬의 가장자리가 깨끗한 장점 이 있다(Han, 1991). 명문 부분의 앞과 뒤(Fig. 16 and 17)에서 볼 수 있듯이 글자 부분만 금사로 표현한 것 을 알 수 있다. 명문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문위사는 지름이 0.13~0.15mm 정도인 Z꼬임의 좌연사(左撚絲) 이며, 2올씩 위입하여 무늬를 나타내었다. 문위사에 는 곳곳에 금 조각이 남아있어 금사로 추정되는데, 조사 당시 심사(芯絲)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봉취직으 로 제직한 직물을 ‘장화(粧花)’라고 하며, 서양에서는 brocade라고 한다. 봉취직의 직물은 바탕조직에 따라 장화견, 장화단, 장화융 등으로 구분하는데, 수자직 바탕에 금사로 무늬를 덧 짠 직물은 직금장화단(織金 粧花緞)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대의 명문은 해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나 다행히 금사가 위입된 부분은 손상되지 않 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금사의 조직과 흔적을 파악하면 명문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겨 금사 부분의 조직을 분석하여 의장조직도로 표시하였다. <Table 1>은 한자마다 조직도를 분석한 것이며, 한문을 읽는 순서에 따라 <Fig. 16>에 부여한 번호대로 분석한 것 이다. 그 결과, 글자는 초서체인데다 획이 빠진 부분 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연구자들에 따라 앞부분 은 漢府內造(한부내조), 漢康內造(한강내조), 漢店內造 (한점내조), 漢官內造(한관내조)로, 뒷부분은 送日壽萬 (송일수만), 送日雪萬(송일설만), 燕日壽萬(연일수만) 으로 독해하는데 명문이 명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았 다. 그러나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漢府內造(한부내조) 燕日壽萬(연일수만)’이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데, 그 의미는 “한부(漢府)에서 만들다. 언제나 만수무강 하십시오.”라는 기원의 문장으로 추정된다. 문장 가운 데 ‘漢府’는 제작한 장소를 뜻하는데, 당시 조선의 수 도였던 한양(漢陽) 혹은 한성(漢城)을 뜻하는지, 중국 의 한(漢) 왕조를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일성록에는 “한부단(漢府縀)이나 공단(貢縀)의 가 격은 10여 냥이고[假令漢府縀貢縀之價爲十餘兩]”라는 기록이 있으며(ITKC, 1793) 비변사등록에는 “무늬 가 없는 한부단[無紋漢府緞]”에 관해 적혀 있는데 (NIKH, 1769), 두 기록 모두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옷감에 관한 내용이다. 심익창 광다회의 명문과 생산 지에 대한 것은 앞으로 많은 유물이 조사되면 명확하 게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Ⅳ. Conclusion

    조선시대 분묘에서 출토되는 복식은 우리가 문헌 으로만 알 수 있었던 자료들을 실제 유물로 접하는 계 기가 되기도 하며, 꾸준히 발표되는 출토복식이 증가 함에 따라 그간 한국복식사에서 당연시했던 일부 이 론들이 바뀌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복 식사 연구에 있어 고무적인 일이므로 출토복식이 갖 는 의미와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의원군(1661-1722)과 심익창(1652-1725)은 조선시 대 상위계층의 인물들이었던 만큼 그들의 묘에서도 여러 점의 복식이 출토되었다. 두 사람의 복식 가운데 는 각각 실로 짠 허리띠가 한 점씩 발견되었는데, 소 폭직물의 일종이며, 오직 허리띠의 용도로 섬세하게 제작된 아름다운 허리띠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발견 된 조선시대 끈목으로 제작된 남성의 허리띠는 주로 엮음직으로 짠 것이 대부분으로 소폭직물형의 허리띠 로는 두 사람의 것만이 보고되었다. 엮음직의 허리띠 유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듯이 허리띠의 소재인 다회에 관한 연구도 주로 엮음직의 끈목에 집중되어 있다. 그 러므로 의원군과 심익창의 허리띠는 17~18세기의 남 성 복식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사료적 가 치를 지닌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고문헌과 회화자료를 통해 의원군과 심익창의 허리띠를 지칭하기에 알맞은 명칭이 있는지 를 살펴보았다. 직기에서 직조한 납작하고 넓은 폭의 끈목은 ‘광다회’, ‘사문직대’, ‘대자’, 그리고 ‘부납’이 있는데, 이 가운데 ‘사문직대’가 두 허리띠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용어이나 ‘광다회’가 가장 보편적으 로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므로 ‘광다회’로 지칭하는 것 이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의원군의 광다회는 모사직으로 직조하였는데, 모사 직 특유의 사각형 무늬가 두드러져 보이는 직물이다. 광다회는 8cm 너비로 짜서 반을 접고 가장자리는 경 사를 9cm 정도 그대로 남겨 술로 사용했다.

    심익창의 광다회는 해수강애문과 화문이 있는 문 단으로 직조하였다. 10.5cm 너비로 짜서 홑으로 사용 했는데, 양 가장자리에 해수강애문이 중앙을 향해 마 주 보는 상태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화문이 10~11cm 간격으로 11줄이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광 다회의 양쪽 끝부분에는 망장식이 있는데, 경사를 길 게 남겨 몇 가닥씩 굵게 꼬아 62올을 만든 후 보주 형태의 망을 짰다. 한쪽 망수 장식 위의 왼쪽에는 8자 의 명문이 금사로 적혀 있다. 현재 금사는 심사만 남 아있는 상태이나, 군데군데 남아있는 금가루가 금사 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명문은 초서체에다 빠진 획 이 있어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漢府內造 燕日壽萬’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데, 그 의미는 “한부(漢府) 에서 만들다. 언제나 만수무강 하십시오.”라는 기원이 담긴 문장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는 17~18세기에 생존했던 의원군과 심익창 의 광다회를 중심으로 소폭직물형 남성 허리띠에 관 해 일부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대상이 2점에 불과하 여 실물 자료에 한계가 있으나, 두 사람의 광다회는 각각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어 복식뿐만 아니라, 당 시의 직물문화도 엿볼 수 있었다. 추후 더 많은 자료 가 조사됨에 따라 심익창 광다회의 제작 장소와 명문 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소폭직물형 허리띠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밝혀질 것을 기대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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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un-soo’s belt Adapted from NFMK. (n.d.). https://www.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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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ord and quiver for dancers Reprinted from KIKS. (1829b). https://kyudb.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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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rtrait of King Cheoljong Reprinted from NPMK. (n.d.). https://www.gog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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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iwon-gun’s belt Photographed by the author. (October 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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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dge of the belt Photographed by the author. (October 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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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air part Photographed by the author. (October 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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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 of the belt Photographed by the author. (October 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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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aft of mock leno weaves Illustrated by the author. (March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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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tus-patterned twill Photographed by the author. (Octobe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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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im Ikchang’s belt Photographed by the author. (April 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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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er and mountain Photographed by the author. (April 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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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wer motif Photographed by the author. (April 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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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ot decoration Photographed by the author. (April 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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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pe of the belt Illustrated by the author. (May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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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aft of brocade Illustrated by the author. (July 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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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nt part of inscriptions Photographed and adapted by the author. (May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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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k of inscriptions Photographed and adapted by the author. (May 12, 2021).

    Table

    The drafts of inscriptions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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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